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영적인 고아가 되지 맙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의 첫 날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과 세계 평화의 날 미사를 집전하며 시작하였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루카 복음서에서의 마리아의 태도를 언급하며 당신 자녀들을 마음에 지니고 보호하며 지킬 줄 아는 마음을 지닌 분이시라고 언급하며 마리아처럼 자애로움과 희망을 심는 시선으로 스스로를 타인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고, 어느 누구도 영적인 고아로 만들지 말라고 하였다.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에서 소속감과 뿌리의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기를 권고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전문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히 되새겼다.’(루카 2.19) 루카는 마리아가 이 즈음에 겪고 있는 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해하려거나 상황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가지지 않고 마음에 새길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당신 민족 안에 계시는 하느님 삶을 자신의 마음에 담아두고 지킬 줄 알았던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당신 아드님의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듣는 것을 배웠고 이로 인해 전 생애를 관통하며 하느님의 심장 박동을 역사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되는 법을 배웠고, 이 배움을 통해 아드님이 된다는 아름다운 경험을 예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를 통해 영원하신 말씀은 육화 되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어머니와 같은 자애를 알도록 해 줍니다. 마리아와 함께 아기이신 하느님께서는 언약의 백성이 지닌 열망과 간절함과 기쁨과 희망을 알게 됩니다.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의 충직하고 거룩한 백성의 아드님이 계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에서 마리아는 대단한 토론을 하거나 주역을 맡는 대신 당신 아드님의 삶과 소명을 지키는 주의깊은 시선을 지닌 말수가 적은 여인으로 보여집니다. 아드님께서 사랑한 모든 것과 함께 말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혼란함도 지키실 줄 알며 모두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상황으로 다가가셨습니다. 당신 아들들의 마음에 침묵으로 지고가는 십자가를 동행해 주셨습니다. 수 많은 신심과  수 많은 성지와 경당들이 감춰진 곳에 있으며 집에는 수많은 그분의 상이 있음을 상기해 봅니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어머니의 온기를 전해 주어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감싸안아 줍니다. 어머니의 온기는 당신 아드님께서 시작하신 교회에서의 자애로운 혁신의 근원이 되는 불씨가 꺼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 계신 곳에 자애로움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모성애로써 겸손과 자애가 약한 이들이 아닌 강한 이들의 미덕임을 보여주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기 위해 타인을 함부로 대할 필요가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288 참조) 언제나 하느님께 충직한 거룩한 백성은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이심을 알아보고 경배해 왔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가 우리의 어머니로서 지니신 모성애로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 동행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고아들이 아닌 어머니의 백성들입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무기력과 스스로에 갇혀 버리면서 지니는 개인주의와 이기심의 성향에 가장 강력한 해독제 역할을 해 주십니다.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단지 냉냉한 사회가 될 뿐만 아니라 가정이라는 맛이 사라진 마음을 잃어버린 사회가 됩니다.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자비가 없어 냉정한 계산과 이성만이 존재합니다. 어머니는,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자애로움을 주실 줄 아는 분들이시며 조건없이 자신을 내어주고 희망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감되어 있거나, 병원의 침상에 누워있거나,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아들을 둔 어머니들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춥거나, 덥거나, 비가오거나, 가뭄이 들거나, 절대 지지 않으시고 아들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 노력하십니다.  난민캠프나 전쟁에서도 어머니들은 당신 아들들의 실패와 고통을 안아주시고 지지해 주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시는 어머니는 어느 아들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어머니가 계신 곳에 일치와 소속감, 자녀라는 소속감이 있습니다.

한해를 시작하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마리아께서 지니신 어머니 모습과 교회에서 보여지는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기억합니다. 우리를 영적인 고아가 되어버리도록 만드는 질병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고아처럼 느낄 때는 한 가족이나, 민족, 고향이나 우리의 하느님께 소속해 있다는 느낌이 사라져 갈 때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자아도취에 빠져버리는 마음에 자리 잡습니다. 우리의 삶이 선물이라는 것, 타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우리 공동의 가정에서 나눔을 하도록 초대받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 드는 마음입니다.

스스로를 고아로 평가하는 것은 카인의 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 아우가 자신에게 속해있지 않고 알지 못한다고 확인을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고아와 같은 행동은 영혼을 조용히 망가트리는 암적인 존재입니다. 이렇게 차츰 물들어간다면 아무도 어느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하게 됩니다. 더이상 내 소속이 없어지기에 땅을 잠식해 들어가며, 나를 소속시켜 주지 않기에 타인들도 잠식되어 갑니다. 하느님께도 속하지 못하기에 그분에게서도 멀어지다가 최후에는 우리 자신도 하느님께서 주신 가족으로서의 성씨를 잊게되고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어 잠식되어 버럽니다. 우리를 묶어주는 줄을 잃어버릴 때 조각나고 분열된 문화는 우리가 고아로 자라도록 만들어 버리고, 거대한 공허와 외로움을 줍니다.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만남의 결여는 마음을 무디게 합니다.’(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49 참조) 경이와 자애, 자비와 측은함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영적인 고아가 되는 것은 자녀가, 손자나 부모 혹은 조부모, 아니면 친구나 신앙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잊게 만듭니다. 놀이와 노래와 웃음과 휴식과 감사의 가치라는 기억들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경축함은 백성이 되었음을 느끼면서 번지는 미소 띈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며 우리의 소속감을 느끼도록 해 줍니다. 오직 공동체와 가정과, 사람들에게 소속될 때 알 수 있는 따듯함과 온기를 배울 수 있도록 하며 인간적인 성장을 이루어 갑시다. 소비와 소비되어지는 목적으로 초대를 받지 않고 말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우리가 물물 교환될 상품이나 정보 교환을 위한 대상이 아님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가족이며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소속감을 느끼도록 해 주며 뿌리 의식과 우리 도시와 공동체 안에서 일치시키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집이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공통된 장소를 만들도록 노력하고 가꿉시다.(교황 권고 찬미받으소서 151 참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모두 내어 놓으시는 순간에도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겨놓으려고 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생명과 더불어 당신 어머니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당신 아들이 있습니다. 여기 당신 아들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우리 집과, 우리 가정과 우리 공동체, 우리 민족 안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그분의 어머니로서의 시선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 시선으로 우리는 고아에서 해방될 것이며 우리가 서로 형제임을 기억하게 해 줄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속해있고, 당신은 내게 속해 있으며 우리는 하나입니다. 이 시선은 성모님께서 자애로움으로 돌보셨듯이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따를 수 있도록 배우게 해 줍니다. 희망을 심어봅시다. 소속감과 형제애를 심어봅시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에게는 어머니가 계심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어머니가 계십니다. 이 사실을 고백합시다. 에페소의 신자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세번 그분을 청해 봅시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천주의 성모 마리아, 천주의 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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