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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성야 미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희망을 모두에게

부활 성야 미사 - ANSA

부활 성야 미사 - ANSA

17/04/2017 10:50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마태 28,1). 그 발걸음을 상상해 봅시다...: 무덤에 가는 사람의 전형적인 발걸음을, 혼란스러움으로 힘이 빠진 발걸음을, 모든 것이 그렇게 끝났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허약해진 발걸음을 상상해 봅니다. 그들의 창백해지고,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상상해 봅니다... 사랑이신 분이 죽었다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가? 라고 자문들 해봅니다.

제자들과는 다르게, -십자가 위에 계신 스승의 마지막 호흡과 함께한 것처럼, 그리고 무덤을 제공한 아리마태아의 요셉처럼- 그녀들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버티어 내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대면하고, 불의의 쓴맛을 참아내는 두 여인입니다. 그녀들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고통과 그리고 체념해야 함을 받아 들이지 못함과 또한 모든 것이 항상 이렇게 끝나야 한다는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함을 가지고, 무덤 앞에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상상력을 가지고 애쓴다면, 이 여인들의 얼굴에서, 많은 비인간적인 불의와 고통의 무게를 감수하는, 많은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의 얼굴을 그리고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얼굴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녀들 안에 투영되는, 도시 안에서의 결핍의 고통 그리고 착취와 인신매매의 고통을 느끼는 얼굴들을 봅시다. 또한 그녀들 안에서, 이민자들 이라는 이유와 가족과 집과 조국을 떠나온 난민들 이라는 이유 때문에, 멸시 당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봅니다. 나이들음에서 느끼는 고독과 버림받음을 눈빛 가득히 가진 사람들의 얼굴들을 봅니다. 많은 이들의 희망을 못박고 땅속에 묻어버리는 일상의 이기심과 변화를 거부하는 정체되고 효과 없는 관료주의 아래에서, 권리를 빼앗아 가고 많은 꿈들을 앗아가는 부정 부패의 무거움에 묻혀있는 자신들 자녀들의 삶에 대해서 우는 여인들과 어머니들의 얼굴을 그녀들은 반영합니다. 그들의 고통 안에서, 살아가면서 존엄성을 침해당하는 모든 이들의 얼굴을 그녀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많은 얼굴들이 있습니다. 혹시 나의 얼굴을 아니면 당신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들처럼 우리 역시, 멈추어 서지 않고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라고 체념하지 말아야 함에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하느님의 성실함에 대한 확신과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한 우리들의 얼굴들은, 우리들과 다른 이들의 상처와 많은 불성실함과 실패와 좌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덤 그리고 좌절감과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더더욱, 우리들 손 안에 놓여진 하느님의 희망을 거부 하게 하는 회피에 익숙해지면서, 이것이 삶의 이치라고 설득 당함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들의 발걸음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을 원하는 소망과 슬픈 체념 사이를 헤매는 그녀들의 발걸음 처럼 우리들의 발걸음도 그렇습니다. 이럴 때, 단지 스승만 죽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우리들의 희망도 죽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마태 28,2). 갑자기, 그 여인들은 큰 흔들림을 느낍니다. 무엇인가, 누군가가 그녀들의 발아래 땅을 흔들리게 합니다. 뒤이어 누군가가 그녀들에게 다가와서 “두려워하지 마라”하고 말하면서, 덧붙여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마태 28,6)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세 대대로, 이 거룩한 밤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선포입니다: 형제 여러분, 두려워 하지 맙시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찢겨지고 부서지고 으스러진 바로 그 생명이 다시 깨어나고, 새롭게 심장이 뛰기 시작 했습니다 (로마노 과르디니, ‘주님’, 밀라노 1984, 501쪽. 참조). 부활하신 분의 심장이 뛰는 것은, 선물로, 은총으로, 희망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또한 변화시키는 힘처럼 그리고 새로운 인간의 누룩처럼 나누어 주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단지 무덤의 돌을 치워 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를 우리들의 생산성 없는 비관 안에 갇히게 하고, 우리를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계산된 개념적 방식들 안에 갇히게 하고, 안전에 대한 우리들의 강박적 추구에 갇히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가지고 놀게 하는 끝없는 야망 안에 갇히게 하는 모든 장애물을 치워 버리길 원합니다.

로마인들과 한패인 원로들과 대사제가, 모든 것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때,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달렸고 자신들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모든 가능성을 뒤집어 엎기 위해서 관여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다시, 새 시대를, 자비의 시간을 튼튼하게 하고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이것은 항상 마련해 두신 약속입니다. 이것은 충실한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놀라움 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의 삶은 부활의 새싹을 숨기고 있으며, 다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삶의 헌신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밤이, 우리가 선포하라고 우리를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부활하신 분의 심장이 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의 발걸음을 돌리게 한 것이며, 서둘러 떠나게 한 것이며,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달려가게 한 것입니다 (마태 28,8. 참조). 이것이 바로 그녀들의 평상시의 시선과 발걸음으로, 다른 이들과 만나기 위해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녀들과 함께 무덤으로 들어간 것처럼, 그녀들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가고 우리들의 걸음으로 우리들의 시선으로 돌아가길 권고합니다. 그녀들과 함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떠납시다. 떠납시다 … 마치 무덤이 마지막 선고를 받은 것 같은 그곳으로, 죽음이 마치 마지막 해결책인 것처럼 여겨지는 그 모든 곳으로 떠납시다. 주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이 진실임을 보여주고 선포하고 공유하기 위해서 떠납시다. 그분께서는 살아 계시고, 희망과 꿈을 그리고 존귀함을 땅에 묻은 많은 얼굴들 안에서 다시 살아나길 원하십니다.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우리를 맡겨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새로운 새벽으로 부터,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줄 수 있는 새로움으로 부터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맡기고 떠납시다. 그분의 다정함과 사랑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도록 맡겨드리고,  그분의 심장 박동이 우리들의 약한 심장 박동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맡겨드립시다.

 

17/04/2017 1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