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바로가기 찾기 바로가기

SNS:

RSS:

앱:

바티칸 방송국

세상과 소통하는 교황과 교회의 목소리

언어:

바티칸 \ 교황청 소식

[연설 전문] 유엔(UN) 주재 교황청 대사 아우자 대주교, 유엔 본부서 파티마의 성모 발현에 따른 세계 평화 교훈 네 가지 강조

파티마 사목방문 미사 - AFP

파티마 사목방문 미사 - AFP

17/05/2017 10:19

주 유엔(UN) 교황청 대사 겸 상임 옵저버 베르나르디토 아우자 대주교가 5월 12일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과 평화 메시지의 지속 관련성’을 주제로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연설했다.

아래는 베르나르디토 아우자 대주교의 연설문:

유엔 뉴욕 본부, 2017년 5월 12일.

주 유엔 포르투갈 대표부의 멘도샤 에 무라(Mendonça e Moura) 대사님, 그리고 각국 대사님들, 훌륭한 연사님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내일 예정된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앞두고 이 기념 행사를 주최한 주 유엔 포르투갈 대표부의 협조자이며 교황청 상임 옵저버로서 연설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기쁩니다.

바로 이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포르투갈의 레이리아에 위치한 몬테레알 공군 기지에 도착하여 곧바로 마르셀루 헤벨루 지 소자 대통령을 만나실 것입니다. 이어 우리 행사가 개최되는 동안 교황께서는 파티마 스타디움으로 가는 헬기에 올라타셔서 행사 개최지인 파티마 대성당으로 이동하시게 됩니다. 그곳에서 모든 행사가 마무리될 것이며, 교황께서는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장소에 세워진 소성당 카펠리냐에 들어가셔서 기도하시고, 오늘밤 예정된 촛불기도와 묵주기도를 준비하실 것입니다.

교황과 함께 파티마에서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지 못하는 저희들에게 있어 저는 유엔 본부가 있는 이곳이 평화의 메시지의 지속 관련성을 이야기하는 데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이 메시지는 100년 전 내일, 스스로를 처음으로 하늘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러 오셨다는, 흰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께서 어린 목동들에게 들려주신 내용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에 갈 수는 없지만, 파티마의 일부가 뉴욕본부에 왔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는 이 성모상은 70년 전 파티마 성모 발현 30주년을 맞아 1947년에 비오 12세 교황께서 바티칸에서 축성하셨습니다. 이어 파티마교구장이 성모 발현 35주년을 맞아 1952년 10월 13일에 다시 축성하셨습니다. 파티마에서 축성된 이 성모상은 1946년에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을 창설한 뉴저지 교구의 헤롤드 콜갠 몬시뇰에 의해 지난 1952년 12월 8일 유엔으로 옮겨졌습니다. 콜갠 몬시뇰은 방문자 로비에 위치한 기도실에 성모상을 두고 세계평화와 한국전쟁의 종식을 위해 묵주기도를 봉헌했습니다.

약 65년이 지난 오늘, 파티마의 성모 발현 소성당에 있는 성모상을 복제한 성모상이 유엔으로 되돌아옵니다. 지난 65년간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다양한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성모상 앞에서 만들어낸 평화를 위한 기도가 오늘날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평화를 위한 특별한 방식으로 들리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특별한 방식으로 기도합니다. 시리아의 전쟁 종식을 위해, 그리고 나날이 커져가는 한반도 전쟁 위협의 종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또한 남수단과 소말리아, 예멘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민주공화국과 동부 우크라이나, 그리고 다른 갈등 지역에서 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기도합니다. 아울러 테러리즘, 종교적·민족적·인종적 박해, 전체주의적 사찰, 흉악한 마약 카르텔, 조직화된 범죄, 인신매매와 다른 형태의 현대적 노예제도, 그리고 피와 혐오로 얼룩진 세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국가적 내란의 종식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파티마의 어린 목동들, 곧 루치아 도스 산토스와 그녀의 사촌 동생 프란치스코 마르토와 히야친타 마르토가 증언한 바에 따라 이 성모상에서 한 여인이 나타나 말씀하신 메시지를 검토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유엔의 용어로 말씀드리자면 성모 마리아께서는 본질적으로 모든 국가들에 주재하는 상주 대표부의 핵심 요원들을 부르시려고 평화의 대사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오늘날의 상황과도 연관됩니다. 오늘날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세상을 산산조각낼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셨던, 50여 건 이상의 국제적 갈등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세상이며, 이는 불과 한 세기 전 제1차 세계대전의 상황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평화의 계획”을 말하기에 앞서 목동들이 이 모성적 평화의 대사께서 말씀하신 메시지를 들었다는, 파티마 성모 발현의 신뢰성을 정면으로 다루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어린 목동들이 증언한, 이른바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했다는 내용이 참되다고 알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존재나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한 세기 전에 파티마에서 벌어진 일이 아마도 ‘사실’보다는 동화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지만, 지상적 존재와는 동떨어진 신성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하늘에서 어린 목동들에게 내려온 성모님의 중재 같은 이야기가 믿음을 시험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비그리스도인,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신심을 가진 전통을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 혹은 심지어 가톨릭 신자이지만 기적적인 발현이라는 개념을 곤란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파티마에서 벌어진 일이 선의로 만들어진 미신이지만 속임수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비가톨릭신자와 심지어 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조차 가톨릭 신자들이 한 세기 전에 파티마에서 벌어진 일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고 놀랍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나 어린 목동들에게 성모님이 요청하신 그 무엇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가톨릭 신학에서는 파티마에서 벌어진 일을 “사적 계시”라고 부르는데, 이는 신약성경의 완성 이후 발생한 일로 교회가 믿을 만하다고 승인한 환시와 발현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사적 계시를 인정할 때는, 가톨릭이 성경의 내용이나 예수의 첫 제자들이 전한 전통의 내용을 믿는 방식으로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인간의 신앙, 신중함, 정화된 상식으로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곧 개연성이 있으며 믿을 만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교회는 루치아를 비롯해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증언을 검토하면서, 이 어린이들이 참으로 믿을 만한 증거자들이며, 그들과 관련된 메시지들은 교회가 신앙의 진리나 이성이라고 여기는 것과 전혀 반대되지 않기에 사람들이 신중하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합니다. 이러한 사적 계시의 목적은, 가톨릭교회의 신학에 따르면, 특정시기에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살아가도록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이를 분별없이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런 도움을 반드시 사용할 의무는 없습니다.

이 원리들을 파티마에서의 마지막 발현인 지난 1917년 10월 13일에 발생한 대중적 기적과 관련해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적용해봅시다. 2달 전 성모 마리아께서는 아이들에게 발현이 실제 일어났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믿도록 기적을 약속하셨습니다. 신자들 뿐 아니라 대략 7만 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폭우 속에 모여들었습니다. 거기엔 호기심으로 온 사람들이 있었고, 거친 세속주의자들도 있었으며, 교도권을 반대하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또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기라고 폭로하기 위해 목격자가 되고 싶었던 기자들과 회의론자들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거나 들을 수 없었지만 어린 목동들에게만은 허락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시간에 이르자 어린 목동들이 하늘을 가리켰고, 이어 시커먼 구름이 흩어졌습니다. 불투명하게 드러난 태양은 불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면서 하늘을 가로질러 지그재그 모양으로 전진하며 지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습니다. 리스본 일간지 「오 디아(O Dia)」는 기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관찰할 것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오후 1시. 한낮에 태양이 있었고 비는 그쳤다. 진주빛이 도는 회색으로 물든 하늘은 이상한 빛과 함께 어마어마하게 건조한 경관을 비췄다. 태양은 얇게 비치는 베일처럼 투명해졌고, 사람들은 태양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쳐다볼 수 있었다. 태양은 우중충한 회색으로 빛나는 은반 모양이 되었고 서서히 빛이 퍼져서 구름 사이를 헤치고 나왔으며, 회색빛 천으로 덮은 듯한 은빛 태양이 물러나면서 구름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며 주춤거리는 것이 보였다. 외침소리가 모든 입에서 올라왔고, 사람들은 진흙투성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빛은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을 통하여 빛나는 것처럼 아름다운 푸른색으로 바뀌어 무릎을 꿇고 손을 뻗은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갔다. 서서히 푸른빛이 사라지고 이제는 빛이 노란색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것처럼 보였다. 노란색 점들은 흰색 손수건과 여성들의 검정 치마로 쏟아져 내렸다. 노란색 빛은 낮은 곳에 있는 나무와 바위들, 언덕까지도 한없이 물들였다. 모든 사람은 기대했던 기적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흐느꼈으며 모자를 벗고 기도했다.”

리스본의 다른 주요 매체인 「오 세쿨로(O Seculo)」의 편집장 아벨리노 데 알메이다는 처음부터 성모 발현을 조롱하려고 당시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그가 관찰한 광경에 대해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에는 탈 것들이 잔뜩 세워져 있었고 사람들은 진흙투성이 땅도 개의치 않았다. 엄청난 인파가 하늘의 정점에서 구름을 헤치고 나와 태양을 향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 모두가 불편함 없이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일식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커다란 외침소리가 들렸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적이다! 기적이야!’ 하늘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모두 모자를 벗고 있던 군중들의 놀란 시야 앞에서 태양이 우주의 법칙을 벗어나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떨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태양은 ‘춤을 췄다.’” 이 일이 끝나자, 폭우로 젖었던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과 땅은 말라버렸습니다.

대략 1세기가 지난 후 우리는 어떻게 이를 평가할 수 있습니까? 반성직주의자들, 회의적인 기자들, 적대적인 공무원들, 교회 관계자들을 포함해 약 7만 명의 사람들 모두가 태양과 관련한 집단환각 미사를 경험했던 것입니까? 만일 그랬다하더라도, 앞서 내렸던 비 때문에 젖었던 사람들의 옷이 순식간에 말라버린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7만 명이 똑같은 환각을 공유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환각을 경험해야 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파티마 외의 다른 전 세계에서 같은 광경이 목격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그런 현상을 그냥 단순히 지켜보기만 했을 뿐 그것을 태양계의 대재난적 파멸로 느끼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7만 명 모두가 증언한 자료를 고려하지 않고 제쳐 놓으면서, 그들이 단순히 속았다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이라거나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은, 그 엄청나고 다양한 계층의 군중들이 단순히 기적을 위해 배치된 것이 아니라, 어린 목동들의 증언, 곧 성모님께서 2달 전에 10월 13일 기적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부분 때문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들었다는 점입니다. 순식간에 말라버린 옷이라는 물리적 증거는 지난 세기 동안 파티마의 성모 발현이 믿을 만하다는 결론을 내도록 이끌었습니다. 이 결론은 인간의 신중함이나 우리가 자연적 신앙이라고 부르는 데 근거하여,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유형이 목격자의 신뢰성에 기초한다는 것, 곧 우리가 직접적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것과 연관됩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조차 다른 모든 사적 계시들처럼 주로 인간의 신앙이나 이성의 영향력에 기반해 파티마의 진실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파티마에서 일어난 일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주장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에 근거하는지에 대한 여부입니다. 여기서 고려되어야 할 사실은 한 세기 전 반-가톨릭적 신문매체들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함으로써 어린 목동들이 증언한 내용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덧붙였다는 점입니다.  

그 중요한 배경으로 저는 태양의 기적을 약속했던 여인이 어린 목동들에게 전한 “평화의 계획”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가톨릭 신앙에 깊은 의미와 특별한 요구에 대한 몇 가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저는 평화의 추구와 관련해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인 교훈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회개의 필요성에 관한 것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가던 길을 바꾸어 돌아 서서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며, 생각과 말과 행위를 검토하는 것이고, 평화와 형제애와 연대를 구축하는 대신 어떻게 분열되고 있고 어떻게 해악을 끼치고 있으며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가 너무나도 부족한 이유는 사람들이 호전적인 방식이나 대상화, 그리고 비인간화와 타인을 잔인하게 다루는 데서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의 평화가 너무나도 부족한 이유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나 한 나라의 정책에 대해 면밀하게 숙고하는 것보다는, 타인이 저지른 잘못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국제 사회에 이런 유형의 보편적 회개를 요청하신 바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모든 나라가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고 괴롭히게 만드는 돈에 대한 우상숭배, 전체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대학살에 가담할 수 있게 만드는 부르주아적 무기거래, 전쟁이나 기아, 그리고 자연재해적 상황을 피해 온 난민들을 아무도 맞아주지 않는 상황 등에서 돌아서는 우리의 회개를 요청하십니다. 회개 없는 평화는 언제나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회개는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두 번째 보편 교훈은 평화가 시작되는 지점과 관련됩니다. 어린 목동들은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지옥의 공포에 대한 환시를 비롯해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붕괴와 흰 옷을 입은 주교가 암살되는 교회의 박해에 대한 환시를 보았습니다. 모두 이 세상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회개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관련됩니다. 여기서 성모님께서는 구제책을 목동들에게 설명하셨는데, 곧 티 없으신 성심에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모님의 마음을 모방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마음은 순수하고 분열되지 않으며, 지혜롭고 순종하고, 신실하고 주의 깊으며,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황선출 5년 전인 2000년에 이 정화된 마음이 “총이나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한” 마음이라고 썼습니다. 이 마음은 역사를 바꿉니다. 평화는 마음 속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평화를 건설하고 유지하고 중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위대한 중재자들의 노력과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평화의 혁명이 흐르는 것은 그러한 변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보편 교훈은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기도는 평화의 도구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린 목동들에게 타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평화가 그들의 영혼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묵주기도, 10번의 성모송 후에 바치는 구원송과 같은 특별한 기도를 바치거나, 매달 첫째 토요일에 대한 신심을 기념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도에 관해 두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의 주관적 가치에 관한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특별히 자비로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기도할 때 그렇습니다. 심지어 비신자들도 기도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인정합니다. 많은 심리적·의학적 연구들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러나 파티마의 메시지에는 기도의 객관적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곧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내부 세계 뿐 아니라 외부 세계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평화주의자들의 활동을 넘어서는 성모 마리아께서는 어린 목동들을 불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인의 회개를 위한 기도, 세계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볼셰비키 무신론 공산주의가 시작된 러시아의 회개를 위한 기도, 총에 맞을 흰옷의 주교를 위한 기도 등입니다. 이러한 기도들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지난 1982년, 2000년에 말씀하셨듯 필연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1991년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히야친타의 기도와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조국 폴란드에 반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민주정권이 수립된 이후, 그는 기도를 통해 성모님에게 의탁하며 모성적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을 자유로 인도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평화를 위해서는 행동하기 전에 기도와 희생이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교훈은 모든 사람들이 평화운동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에 관한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평화를 위한 일에 국가 지도자들이나 외교관, 종교 지도자들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세 명의 단순한 어린이들에게 오셔서 세계와 영혼들의 선익, 평화라는 큰 뜻을 위해 메시지를 전하셨으며, 비밀과 특별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선별기준은 모든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지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무능하거나, 너무 어리다고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각각의 역할이 있습니다. 어린 목동들이 선택될 수 있었고 그들이 했던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해 응답한다면, 이것은 모든 이들의 위한 표징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단순히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지속 관련성과 더불어 매우 현재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모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어린 목동들에게 주신 메시지, 곧 회개의 실천, 마음의 변화, 기도와 희생 등은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 평화 유지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파티마에서 오늘밤과 내일,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을 평화를 위한 기도로 이끄실 것입니다. 평화의 대사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주신 살아있는 유산에 대해 감사드리면서, 여기 유엔에 모인 우리들 또한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루치아처럼 평화를 이루는 긴급하고도 고귀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 각자의 몫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17/05/2017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