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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 삼종기도와 일반알현

[일반알현 전문] 2017년 5월 24일: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 옆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걸어가신다

프란치스코 교황  - REUTERS

프란치스코 교황 - REUTERS

25/05/2017 10:46

                                               그리스도인의 희망

                                           23. 엠마오, 희망의 여정

[성경 말씀] 루카 24, 28-32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교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루카 복음(24장 13-35절)이 전하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체험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그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두 남자가 실망하고 침통한 채로, 좋지 않게 끝난 사건의 비통함을 뒤로해야 만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해의 파스카 축제 전에는 감동으로 충만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다림과 온 백성들의 희망에 결정적인 날들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내맡겼던 예수님이 드디어 결정적인 전투에 도달한 것 같았고, 오랜 준비와 숨어 있던 기간 후에, 이제 자신의 힘을 나타내 보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두 순례자는 이제 산산 조각난, 단지 인간적인 희망만 키웠습니다. 골고타에 세워 올린 그 십자가는 그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패배를 인정하게 하는 표징이었습니다. 만약 그 예수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면, 하느님은 무기력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의 힘 앞에 무방비 하며, 악에 저항할 수 없다고 그들은 결론 내려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주간 첫날 아침 이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갑니다. 안식일의 깊은 침묵 동안 수난 사건들과 예수님의 죽음이 아직도 그들 눈에서 아른거리고, 마음 안에는 사건들에 대한 고통스러운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해방의 노래를 불러야만 했던 그 파스카 축제는 그들 삶에서 최고로 고통스러운 날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곳, 조용한 마을로 가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버리고자 원하는 사람의 표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그들은 슬픔에 가득 차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장면(길)은 복음서들의 이야기들에서는 이미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이야기 하기 시작하는, 이제는 항상 더 중요한 것이 될 터였습니다.

예수님의 그 두 제자와의 만남은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입니다. 삶 안에서 생기는 많은 교차점 가운데 하나와 비슷합니다. 두 제자는 생각에 잠겨서 걸어가고 있는데 그들이 모르는 한 사람이 그들 가까이 갑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가려져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희망의 치료법”를 시작하십니다. 이 길 위에서 일어나는 것은 하나의 희망의 치료법입니다. 그것을 누가 행합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우선, 질문과 경청입니다.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간섭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 두 제자의 실망의 동기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휘감은 씁쓸함을 마음 깊은 곳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그들에게 시간을 줍니다. 여기에서 인간 존재의 반복되는 하나의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는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 우리는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21절). 얼마나 많은 슬픔과 절망들, 그리고 실패들이 각자의 삶 안에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그 두 제자들과 같습니다. 삶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망을 가졌고, 얼마나 많이 우리는 행복에서 한 걸음 멀어짐을 느꼈으며, 절망의 땅을 다시 찾았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살아가는 절망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십니다. 그들과 함께 걸어가시면서, 사려 깊은 방법으로, 희망을 다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책을 손에 드는 사람은 쉬운 영웅적 행위의 역사들과 전쟁터에서 내리치는 번개를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희망은 전혀 값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패배들을 넘어섭니다. 고통 당하지 않는 사람의 희망은 아마도 희망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들의 적들을 피로 물들이시며 자신의 백성들을 승리로 이끄는 지도자로 사랑 받으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춥고 바람 부는 날에 타오르는 하나의 희미한 불꽃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그분의 존재가 약해 보일 지라도,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가 기피하는 장소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를 위해서 모든 성찬례의 중요한 행위를 재현하십니다.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고, 쪼개어 주십니다. 이러한 행위들 안에 아마도 예수님의 전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모든 성찬례 안에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표징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 기울여 들으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의 삶을 “떼어”(희생 없이는 사랑도 없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모두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의 만남을 급박한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교회의 모든 운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성벽 안에 틀어 박혀있지 않았고, 가장 활기찬 그들의 환경 안에서, 말하자면 그들의 길을 걸어 갔다고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거기에서 희망들과 어떤 때는 무거운 절망들을 가진 사람들을 만납니다. 교회는 개인적 양심의 서랍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모든 이들의 역사들을 경청합니다. 그런 다음, 생명의 말씀과 하느님 사랑의 증언과 마지막까지 충실한 사랑을 주기 위해서 경청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으로 불타 오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삶 안에서 어렵고 어두운 순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순간들은 슬프고, 생각 많고, 지평 없이 벽을 앞에 두고 걸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시기 위해서 항상 우리 옆에 계십니다. 엠마오로 인도하는 길의 비밀은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반대로 나타나 보이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랑 받는 존재로 계속되며,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절대로 그만두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더 고통스러운 순간들과 더 나쁜 순간들과 또한 패배의 순간에도 항상 우리와 함께 걸어 가십니다. 바로 그곳에 주님께서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주님께서 항상 우리 옆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기 때문입니다!

 

25/05/2017 1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