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만남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 없는 사제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산 로렌조 주교좌성당에서 리구리아의 주교들과 사제단과 나눈 긴 대화에서 상기시켰던 내용이다. 교황은 세속주의, 출세주의, 중상모략을 피하고 수도자들의 삶 안에서 증거에 중점을 두라고 강조했다.

리구리아 사제단과 나눈 긴 대화는 아주 열정적이었다. 교황은 수도자들로 가득 찬 산 로렌조 주교좌성당에서 네 가지 질문에 길게 답변하면서, 리구리아의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함께 모든 분야에 걸쳐 문제를 다뤄나갔다. 교황은 무엇보다 먼저 영성생활을 열심히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방식을 따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예수님께서는 낮에는 늘 사람들과 함께 지냈지만, 저녁에는 “아버지와 함께 있기 위해” 항상 기도하셨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기서, 교황은 오로지 모든 것이 해결되기만을 바라고, 시간표대로 움직이며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에만 책임을 다하는 “안주하는 사제”가 되지 않도록 당부했다. 교황은 “그와 같이 짜여진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제들은 하느님과 이웃들과 만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교황은 본당 신부는 “기업가적 방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고,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삶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모두가 이러한 만남에 중점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사제 여러분, 이 점을 성찰하십시오. 나는 만남의 사람입니까? 나는 감실 앞에 있는 사람입니까? 나는 거리로 나서는 사람입니까? 나는 경청할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입니까? 또는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일들을 말하기 시작할 때, 나는 ‘예, 예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습니다(…)’라고 설명합니까? 사람들에게 지치도록 나를 내맡깁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정해진 형식은 없습니다. 이런저런 형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이 다른 이들을 위한 것, 곧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성부를 위하고 사람들을 위한 삶이라는 뚜렷한 의식을 지니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고,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셨고, 기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런 일들을 말하도록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교황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감실 앞에 있을 때, 시간낭비만 하지 않도록  “앵무새”처럼 기도하지 않고 “주님께서 바라보시도록” 내맡길 필요가 있는 이유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교황은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 없이는 사제의 삶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삶은 “출세”는 하겠지만 마음에는 “공허함” 만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마도 교황은 씁쓸히 알았던 것이다.

사제들의 형제애를 파괴하는 중상모략을 주의하라

교황은 두 번째 질문에 대답하면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지 못한” 말이라고 유머와 함께 “형제애”에 관한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교황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여기는 “구글 사제 혹은 위키백과사전 사제”가 되려는, “자만”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췄다. “형제”를 껍질 벗기는 중상모략과 험담들은 어떤 사제에게 있어서는 형제애에 대한 최악의 협박이요 많은 경우에 주교 후보자들을 진흙투성이가 되게 만든다고 명확히 강조했다.  

“사제적 형제애를 반대하는 가장 큰 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곧 질투와 시기로 인한 험담입니다. 내게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 혹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행하게 되는 험담. 결국 형제애 보다 관념을, 교리보다 이념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험담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 와 있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험담이나 형제들을 나쁘게 판단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것처럼 ‘닫힌 생활의 폐단’이 된 게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익에 갇혀 있을수록 다른 이들을 더 많이 비판하게 됩니다. 최후통첩은 절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말은 저절로 바깥으로 튀어나오거나 주교가 제안하는 말이겠지만, 저는 제 말을 하고 다른 이들의 말을 듣습니다.”

교황은 형제적 교정을 해주지 않는다면 “사제적 형제애가 위선”이라는 것을 드러내주기 때문에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멀리하라고 신학교 양성 책임자들에게 조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도자들은 가장 필요한 곳으로 갈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교황은 교구 소속성-유연성이라는 이항식에 관해 잠시 멈추어 고찰했다. 우리 모두는 “교구에 속해 있고” 이러한 소속감은 “공중에 떠있는 믿음으로부터, 유명론으로부터, 추상적 개념으로부터 우리를 구한다”고 운을 뗐다. 여기서 교황은 수도회의 카리스마로 주의를 돌렸고, “수도회 카리스마는 교회를 위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 카리스마가 “구체적인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구체적인 장소에 실현되었는지” 항상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성은 또한  “유연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가장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 가장 요청이 많은 곳, 가장 절실한 필요가 있는 곳으로 기꺼이 갈 유연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리스마를 선사하고 가장 절실한 필요가 있는 곳에 합류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자주 쓰는 말은 주변이라는 말이지만, 모든 주변이란 가난한 지역 뿐만 아니라 모든 곳을 지칭한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생각의 주변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곳에 합류되는 것입니다. 이 주변들은 최초의 카리스마가 탄생한 장소에 대한 성찰입니다. 그리고 제가 유연성을 말할 때, 활동에 대한 검토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더 너머의 장소로 가기 위해” 유연해지라는 교황의 격려는 고유한 카리스마가 교구 안에 필요한 것인지 혹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응할 자세를 갖추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교구를 떠날 필요가 있는지 자문하게 만든다.

끝으로 교황은 성소자들의 위기라는 주제를 다뤘다. 우선 교회 전체에 위기감을 조성하는 결혼 성소를 포함한 “모든 성소”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바꾸어야할지 주님께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부언했다. “문제들로부터 배워야 하고” “답변을 찾아야 합니다.” “스캔들”이 되고 있는, “수련자들의 매입”과 같은 중대한 현상에 주의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교황은 일부 유럽 국가와 주로 라틴 아메리카에 만연된 현상으로, 회원수 감소를 해소할 방안으로 가난한 여성들을 수도회에 수련자로 받아들이는 관행을  “스캔들”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성소자들을 매료시킬 만한 증거의 삶은 선교지역에서 회개를 이끌어낸다

교황은 성소자들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증거의 삶”, 곧 “생활방식에서도 기쁨의 증거”를 중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셨던 부르심에 대한 증거이다. 다른 한편, 세속주의와 증거와 반대되는 삶은 “성소자 위기”를 야기시킨다고 경고했다.

“사목적 쇄신, 선교적 쇄신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복음의 기쁨』에서 선교적 쇄신의 필요에 관한 부분을 읽어보라고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선교적 쇄신은 성소자들을 끌어들이는 증거의 삶입니다. 성소자들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보내주십니다. 그런데 만일 사제 혹은 수사나 수녀 등 여러분께서 늘 걱정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다가오는 젊은이들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고, 그들은 더 이상 오지 않게 됩니다 (...) ‘예, 그렇습니다. 내일 그렇게 하지요 (...)’ 왜 그렇습니까? 젊은이들이 성가신 겁니까? 항상 같은 사람이 옵니다 (...) 만일 시간을 낼 수 없다면, 그들의 말을 들어줄 다른 사람을 찾으십시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입시오. 그리고 젊은이들은 항상 활동적입니다. 그들이 선교의 길에 들어서도록 하십시오.”

교황은 성소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증거의 삶, 이것이 열쇠”라고 말했다. 증거는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매료시킬 줄 아는 사랑을 통해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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