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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알현 전문] 2017년 5월 31일: 성령께서는 우리를 희망으로 넘치게 하신다

프란치스코 교황  - ANSA

프란치스코 교황 - ANSA

01/06/2017 11:20

                                              그리스도인의 희망

                           24. 성령께서는 우리를 희망으로 넘치게 하신다

    

[성경 말씀] 로마 15, 13-14

13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 14 나의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 자신도 선의로 가득하고 온갖 지식으로 충만할 뿐만 아니라 서로 타이를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교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성령 강림 대축일이 가까워지면서 그리스도인의 희망과 성령과의 관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주고,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주시며, 우리가 순례자이며 이방인이라는 점을 알게 해주시고, 우리가 안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며, “집안에 틀어 박혀 있는” 백성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바람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는 희망을 닻에 비유합니다(히브 6,18-19 참조). 이 상징에 우리는 돛을 더할 수 있습니다. 닻이 배에게 안전을 주고 바다의 파도 속에 “정박시켜” 잡아주는 것이라면, 대신 돛은 배를 물 위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희망은 정말로 돛과 같습니다. 돛은 성령의 바람을 모아서 동력의 힘으로 변화시켜 배를, 필요에 따라 항해할 수 있도록 항구로 이끌어 줍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다음과 같은 인사로 마무리 합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아름다운 인사입니다.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 15,13). 대단히 아름다운 이 말씀의 내용을 잠깐 묵상해 봅시다.

“희망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단지 하느님께서 우리 희망의 대상, 곧 어느날 영원한 삶 안에서 도달할 수 있다고 우리가 기대를 두는 분이라는 것 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가 희망하도록 하시는 분이시며 “희망 속에서 기뻐하게” 하시는 분(로마 12,12)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단지 죽은 후의 미래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을 희망한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이제 희망 속에서 기뻐합니다. 기쁨을 가지기 위해서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늘 희망 속에서 기뻐합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는 한 생명이 있다”라는 그 반대의 말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희망하는 것이 필요하며, 희망하기 위해서 성령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들은 것처럼, 바오로 성인은 우리를 “희망으로 넘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께서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희망으로 넘친다는 것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며, “희망이 없어도”(로마 4,18) 희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자신의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했을 때 아브라함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한 더더욱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동정 마리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희망해야 하는 모든 인간적인 동기가 없어질 때에도 희망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이며 상속자들(로마 8,16 참조)이라는 내적 증거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이 불굴의 희망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당신의 외아드님마저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32 참조). 형제자매 여러분,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 5,5). 항상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한가지 더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단지 희망할 수 있게 하시는 것 뿐만 아니라, 또한 희망을 심는 사람이 되게 하시며, 우리 역시 당신처럼, 그리고 당신의 은총으로 “파라클리티”(paracliti) 곧, 형제들의 보호자와 위로자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심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좌절감과 당혹감을 심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좋은 그리스도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희망을 심으십시오. 절망과 좌절감의 식초가 아닌 희망의 기름을, 희망의 향유를 뿌리십시오.

복자 존 헨리 뉴먼 추기경님께서는 자신의 연설에서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고난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더욱더 우리 자신의 죄로부터 훈련되어, 우리는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모든 사랑의 행위에 훈련된 정신과 마음을 가질 것 입니다. 우리 각자의 능력에 근거해서 우리는 파라클리토 성령의 모습에 따라 위로자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이 포함하고 있는 모든 의미로서 변호자, 보조자, 위로를 가져오는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조언, 우리의 방식과 주장, 우리의 눈빛은 예의 있고 안정시켜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교구 설교와 일반 설교, 제5권, 런던 1870, 300쪽).

성령께서 이곳 광장에 있는 우리 각자에게 보호자이시고 위로자이신 것처럼,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배제된 사람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파라클리토” 곧 위로자이며 보호자가 되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역시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들과 더 많이 멸시 받는 사람들, 더 많이 필요하고 더 많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보호자이며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단지 사람들의 마음 안에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창조물 안에도 희망을 키웁니다. 또한 조금 놀랍기는 하지만 진실된 피조물이 “해방”을 기다리며 “희망을 간직하고 있으며” 해산의 고통처럼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로마 8,20-22 참조) 있다고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이름 없고 눈먼 힘이 아니라, 창조가 시작될 때 “물 위를 감돌고 있던”(창세 1,2) 하느님 영의 행동 입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강론, 2009년 5월 31일). 이것 역시 창조물을 존중하라고 우리를 재촉합니다. 작품을 창작한 작가를 무시하지 않고서는 작품을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가오는 교회의 탄생인 성령 강림 대축일에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함께 기도 안에서 하나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선물이 우리를 희망으로 넘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하고, 더 많이 외면 당하고, 궁핍 가운데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희망을 마구 쓸 수 있길 여러분에게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01/06/2017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