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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 삼종기도와 일반알현

[일반알현 전문] 2017년 6월 14일: 사랑 받는 자녀들, 희망의 확신

프란치스코 교황  - AP

프란치스코 교황 - AP

15/06/2017 10:00

                                               그리스도인의 희망

                                   26. 사랑받는 자녀들, 희망의 확신

 

[성경 말씀] 루카 15,20-24a

그때에, 20 [작은 아들이]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교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알현은 대형 스크린으로 연결된 두 곳에서 진행합니다. 더위를 피해서 바오로 6세 홀에 모여있는 병자들과 이곳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모두 함께 합시다. 항상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연결해 주십니다. 바오로 6세 홀에 계시는 분들과도 인사 나눕시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빠질 수 있는 나쁜 속박은 사랑은 당연히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현대 인간의 불안은, 만약 우리가 강하고 매력 있고 잘 생기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에서 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마치 인정 받아야 함을 영원히 필요로 하는 사람인 것처럼, 단지 내적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 만을 추구합니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동기를 구걸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할 경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이 없는 이와 같은 세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람 사는 세상 같지만, 진정한 지옥입니다. 사람의 많은 자기 도취는 외로움과 혼자됨의 감정에서 발생합니다. 겉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행동들 뒤에는 하나의 질문이 감춰져 있습니다. 이름을 가지고 불림 받은 존재 곧, 사랑 받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사랑은 항상 이름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

사랑 받지 않거나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는 사춘기입니다. 폭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많은 사회적 증오와 사회범죄의 형태 뒤에는 자주 이해 받지 못하는 마음이 존재합니다. 모든 것에 악의적인 청소년들이 없는 것처럼 나쁜 아이도 없습니다. 다만 불행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주고 받는 사랑의 체험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인간의 삶은 눈빛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보낸다면, 슬픔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조건 없이 미소를 지음으로써 그들에게 탈출구를 열어줍시다. 눈빛을 교환하는 것은, 눈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내디디신 첫 번째 걸음은 조건 없고 우선적인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사랑을 일으키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당신 스스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본성적으로 퍼져나가고 내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애정을 우리의 회개와 연관시키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하느님 사랑의 결과입니다. 성 바오로도 이것에 대해서 완벽한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로마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가 비유에 나오는 방탕한 아들처럼 “멀리 있을 때”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루카 15,20). 우리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자신이 지나가신 이 광야로 우리를 찾아 오시기 위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셨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실수했을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만약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라면, 우리 중 그 누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감옥에 있어도 그 아들을 지속적으로 사랑합니다. 제가 사목했던 교구에서 면회를 위해 교도소 앞에서 줄을 섰던 많은 어머니들을 저는 기억합니다. 그들은 아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교도소로 들어가기 전에 검문을 받으면서 많은 멸시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말합니다. “그는 내 아들”입니다. “아주머니 당신의 아들은 범죄자입니다.” “저의 아들입니다.” 오직 이러한 부성애와 모성애 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어머니는 인간적 정의를 지워버리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잘못은 속죄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고통 당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죄인일 때에도 그를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도 그와 똑같이 우리에게 행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우리 삶에 그 어떤 저주도 없으며, 오직 무에서 우리 존재를 불러주신 하느님 말씀의 자애가 있습니다. 모든 것의 진리는, 은총으로 우리를 받아주신, 성령을 통해서 성부와 성자를 연결하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원했으며 사랑 받았고, 소망되었습니다. 그 어떤 죄도, 그 어떤 잘못된 선택도 모든 것을 지워버릴 수 없게 우리 안에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새긴 분께서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우리는 항상 좋은 물이 솟아오르게 하는 작은 샘물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주는 물은 (네)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불행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한 약은 무엇입니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약은 무엇입니까? [신자들의 대답: 사랑입니다.] 더 크게 말하십시오! [큰소리로 대답: 사랑입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모두 훌륭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것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까? 우선 먼저 안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면 슬퍼하는 것을 그만 둘 수 있을 것입니다. 증오가 죽음을 부르는 것보다 더 강한 방법으로 사랑은 사랑을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죄에서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죽으시지 않으시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두를 위한 부활의 시간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실망에서 일으켜 세울 때이며, 특히 3일 보다 더 긴 시간 무덤에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때입니다. 우리들의 얼굴 위로 자유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여기에 희망의 새싹이 싹틉니다. 희망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희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사랑하시며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고맙습니다!  

 

15/06/2017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