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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 삼종기도와 일반알현

[일반알현 전문] 2017년 10월 11일: 깨어 있는 기다림

프란치스코 교황  - AFP

프란치스코 교황 - AFP

12/10/2017 20:26

                                         그리스도인의 희망

                                       36. 깨어있는 기다림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깨어 기다리는 희망의 차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깨어있음에 대한 주제는 신약 성경의 핵심 맥락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설교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 12, 35-36). 편안함과 힘든 순간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예수님의 부활을 따르는 이 세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잠들지 않는 종처럼 되라고 강조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책임을 요구하며, 우리는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새 날을 기쁨과 놀라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이 부지런하고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매일 아침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들을 쓰기 시작하는 빈 페이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속죄를 통해 구원 받았지만, 하느님께서 마침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때 (1코린 15,28. 참조), 예수님의 주권의 완전한 나타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서 주님께서 오실 때, 이 “약속”, 곧 주님과의 약속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이 날이 왔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새워 기다리는 종들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구원을 준비하고 있어야합니다. 그 만남을 준비하고 있어야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오시면 그분과의 만남이 어떠할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거대한 기쁨의 포옹이 될 것입니다.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만남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지루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어느 일상들의 항상 똑같은 단조로움 안에도 은총의 신비가 숨겨져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의 인내로 사막에 물을 대는 우물처럼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헛되이 일어나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이 처한 그 어떤 상황도 사랑에 완전히 무감각하지 않습니다. 새벽의 기쁨을 잊게 하는 긴 밤은 없습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새벽은 더욱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어려운 순간들의 추위도 우리를 마비시키지 못합니다. 온 세상이 희망에 반대하여 말하고, 미래가 어두운 구름만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 미래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음을 압니다. 이 일이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신뢰심을 갖고 삶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역사가 끝날 때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생각만 있으면 됩니다. 모든 것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 받을 것입니다.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달콤하고도 강력한 기억은 이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유혹을 쫓아낼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나면 우리는 신뢰와 희망으로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집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집 안에 있고, 이 집의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 안에 갇혀 있지 말고, 영광스러웠어야 할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고 한탄하지 맙시다. 항상 앞만 바라봅시다. 우리 손으로 이루어 내는 미래만이 아닌, 무엇보다 하느님 자비의 끊임없는 관심인 미래를 바라봅시다. 불투명한 모든 것이 어느 날 빛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뜻은 안개 낀 것처럼 어렴풋한 것이 아니라 잘 그려진 구원의 계획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따라서 마치 역사가 통제력을 상실한 열차인 것처럼, 비관론과 함께 사건의 흐름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지 맙시다. 체념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운명 앞에서 어깨를 들거나 머리를 숙이는 것은 그리스도인 답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희망을 주는 사람은 절망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지 말라고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떠안으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평화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평화를 건설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수동적인 사람은 건설하는 사람이 아니며, 게으르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인은 평화가 위협을 받을 때, 예수님께서 보물로 우리에게 주신 선을 가져오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를 가질 때 평화를 건설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삶의 매순간, 첫 제자들이 그들의 언어인 아람어로 ‘마라나타’(Marana tha)라고 표현했던 기도를 반복해서 드립시다. 이 말은 성경의 마지막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복해야 할 응답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애정 이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 중에, 삶의 어려운 순간에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우리를 안심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은총입니다. “보라, 내가 곧 간다”(묵시 22,7).

 

12/10/2017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