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가경자 교령 재가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가경자 인준,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령에 서명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교령들과 함께, 하느님의 종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영웅적인 덕성에 관한 교령을 선포하도록 시성성에 권한을 부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8일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을 만났다. 알비노 루치아니(요한 바오로 1세 교황)는 지난 1912년 10월 17일 카날레 다고르도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포르노 디 카날레에서 태어났으며, 1978년 8월 26일 교황으로 선출됐다.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을 계승해 30일 남짓 교황직분을 수행했지만, 사도궁에서 11월 28일 선종했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에 위치한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고향 사람들에게 교황은 “이미 성인”이라고 벨루노교구 주세페 안드리크 주교가 말했다. 벨루노교구의 은퇴 교구장인 그는 “이 산악지방의 정서”를 감안할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준한 교령은 “복자품과 성인품에 올랐던 다른 교황들을 보더라도, 루치아니에게 결코 늦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안드리크 주교는 알비노 루치아니가 “사람들과 친근한 관계를 맺고 경청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콘클라베가 끝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인용했던 표현들 중 하나는 ‘교황으로 선출된 알비노 신부로부터 이제는 더 이상 애정어린 관심을 받기는 불가능해 보입니다’라는 말이었다”고 덧붙였다.

안드리크 주교는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이 “겸손하고, 친절하며, 단순한 사람이고, 기도에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은 복음에의 소명, 믿음,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감,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에서 잘 드러났을 뿐 아니라, 불명확한 표현이나 외교적인 수완으로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본질을 직시하는 면모에서도 잘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안드리크 주교는 ‘알비노 신부’가 “바위에 지치지 맙시다”라는 말을 곧잘 되풀이했다며, “바위는 교회에 대한 소속, 교황에 대한 순명, 교회와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에 대한 순명”이었다고 전했다.

요한 바오로 1세 시성 부청원인 스테파니아 팔라스카도 루치아니 교황의 “겸손”을 강조했다. 일간지 ‘아베니레’의 기자 겸 『죽음의 연대기』 저자인 그는 알비노 루치아니의 삶 안에 “근간이 되고 실제로 살았던 겸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루치아니는 (교황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제요, 사제의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진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1세의 명망 높은 성덕과 영웅적인 덕성을 입증해주는 증거들을 모은 (시성 청원) 자료에는 루치아니를 잘 알았던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증언도 포함돼 있다. 시성 청원인 베냐미노 스텔라 추기경 곁에서 시성 청원을 돕는 스테파니아 팔라스카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루치아니의 겸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교황은 (시복시성의) 마지막 단계의 재판관이기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황 재위 당시 증인이 될 수 없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증언은 자신의 은퇴 이후에 나온 증언이기 때문에 “시성 역사상 유일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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