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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 강론

[강론 전문] 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사랑이 영원히 남고 나머지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 AP

프란치스코 교황 - AP

20/11/2017 21:19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전

                         2017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일

 

우리는 말씀의 빵을 쪼개는 기쁨을 나눴고, 잠시 뒤에는 성찬례의 빵을 쪼개어 모시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는 아무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끝없는 삶, 그 생명의 의미를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걸인들, 곧 그 본질의 걸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당신의 선물을 받기 위해 그분께 손을 내밉시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바로 이 선물에 대해 말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각자의 능력에 따라”(마태 25,15), 하느님의 달란트를 받는 수취인들이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인식합시다. 곧, 우리는 달란트를 받았고, 우리는 하느님의 눈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자신을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주길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선물로 채우기를 바라시는 하느님께 선택되고 축복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눈에는 그 어떤 자녀도 버림받을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사실, 사랑이 넘치시고 우리를 절실히 필요로 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책임을 요구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모든 종은 더 많이 벌어야 할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사명을 완수한 반면, 한 달란트를 받은 세 번째 종은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았고, 그가 받았던 것을 주인에게 돌려줬습니다.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25절)라고 말했습니다. 이 종은 그 대가로 혹독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26절) 주님께서 그 종을 좋아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 마디로, 아주 현실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마 달란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태만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종의 잘못은 선(善)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또한 종종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이 때문에 만족하며,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우리는 그 악한 종처럼 행동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 종 또한 아무런 악도 저지르지 않았고, 달란트를 망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땅속에 잘 보관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직인이 찍히지 않은 티켓을 찾아내는 검표원이 아니라, 당신의 재산과 당신의 계획을 맡긴(14절 참조) 자녀들을 찾으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아버지께서 규칙을 존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만 그치는 당신 집의 품팔이꾼들처럼(루카 15,17 참조), 당신 자녀로부터 사랑의 관대한 대답을 듣지 못할 때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악한 종은, 선물을 나누고 불리기를 좋아하시는 주님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질투하듯이 숨겨서 보관했으며, 그것을 지켜낸 것으로만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보물들을 단순히 보존·유지하려고 염려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비유는 새로운 달란트를 보태는 사람이 참으로 “성실한 종”(21절, 23절)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고정된 사고방식이 아니라 하느님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종은 사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며, 다른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않습니다. 성실한 종은 오직 한 가지만 잊어버립니다. 바로 자신의 이익입니다. 이야말로 유일하게 의로운 태만입니다.

태만은 가난한 이들과 관련될 때는 큰 죄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정확한 이름을 붙이자면, 곧 ‘무관심’입니다. 그들은 “나와 관계없는 일이야, 내 일이 아니야, 사회 탓이야”라고 말합니다. 형제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고, 심각한 문제가 우리를 성가시게 하자마자 채널을 돌려버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잘못된 악 앞에서 분노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의로운 분노를 일으켰는지 묻지 않으시고, 우리가 선을 행했는지 물어보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한 가지 규칙을 든다면, 소중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를 원할 때는, 선물을 받는 사람보다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 더 마음에 드는 선물이 되지 않도록, 우선 선물 받는 사람의 취향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 무엇을 봉헌하고 싶을 때, 복음 안에서 그분의 취향을 찾읍시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이 구절 바로 다음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분께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가장 작은 이들은 바로 굶주린 사람들, 병든 사람들, 외국인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버림받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주님의 모습이 새겨진 것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비록 고통으로 굳게 닫혀 있지만, 그들의 입술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두드리시고, 목말라하시며,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무관심을 이겨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장 작은 당신 형제들을 위해 헌신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착하고 성실한 벗이 되고, 그분께서 우리를 환대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태도를 높이 평가하시고, 제1독서에서 우리가 들었던 “훌륭한 여인들”이 취한 행동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훌륭한 아내를 누가 얻으리오? 그 가치는 산호보다 높다.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잠언 31,10.20). 이런 태도가 참된 용기입니다. 주먹을 쥔 손이나 팔짱을 낀 모양새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내밀고 도와 주는 손, 주님의 상처 난 살갗에 내미는 손 말입니다.

바로 거기서, 가난한 이들 안에서, 부유하시면서도 가난하게 되신(2코린 8,9 참조) 예수님의 현존이 드러납니다. 이 때문에 그들 안에, 그들의 약함 안에 “구원의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세상의 눈에는 가치가 없어 보일지라도, 그들이 하늘에 이르는 길을 열어줍니다. 그들이 “천국을 향한 우리의 여권”입니다. 우리의 참된 부유함인 그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에게 복음적 의무입니다. 단순히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말씀의 빵을 쪼개며 이 의무를 실행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 말씀의 가장 본질적인 수취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영적이고 물질적인 모든 가난에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우리의 삶을 감동시킬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정말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곧,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고, 나머지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에 투자하는 것은 남을 것이고, 나머지는 소멸됩니다. 오늘 이렇게 자문해볼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여러분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재산이나 사라져버리는 부유함에 투자하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부유함에 투자하겠습니까? 우리 앞에 이 물음이 놓여있습니다. 곧, 이 지상에서 소유하기 위해 살 것인지, 혹은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 줄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늘에서 아무 가치가 없지만, 주는 것은 큰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21). 그러므로 우리에게 넘치는 것을 추구할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한 이익을 추구합시다. 그러면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난에 연민을 갖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달란트를 주실 것이고, 중요한 것을 찾는 지혜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할 용기를 주십니다.

 

20/11/2017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