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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 강론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인내’란 체념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대화하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13/02/2018 12:37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묵상을 발전시켰던 오늘 제1독서에서 야고보 사도가 썼던 내용이다.

인내는 체념이나 패배가 아니다

삶과 시련 앞에서 인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황은 이를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그리스도교적 인내를 “패배(sconfitta)”의 태도나 “체념(rassegnazione)”과 구별했다. 이어 “멈추어 있고(fermo)” “닫혀 있는(chiuso)” 사람의 덕목이 아닌,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chi è in cammino)”의 덕목과 같다고 설명했다.

“걸어가고 있을 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는 덕목이라고 말합니다. (예컨대) 병들었거나 지체부자유 자녀가 주어졌을 때, 그렇게 태어났을 때, 부모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을 하느님에게 감사해야지!’ 이런 사람들이 인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사랑으로 그 자녀를 위해 전 생애를 바칩니다. 수년동안 계속해서 지체부자유 자녀나 병든 자녀를 돌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 그렇지만 그런 자녀를 가지고 있다는 기쁨이 그들로 하여금 그 자녀를 계속해서 돌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것은 체념이 아닙니다. 인내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계속 걸어가고 있을 때 주어지는 덕목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자신의 한계를 거부하고 무시한다

교황은 나아가 이렇게 물었다. “‘인내(pazienza)’라는 말의 어원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교황은 그 자체로 책임감을 가져다 준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인내”는 “고통을 내버려두지 않고, (어깨 위에) 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야고보 사도가 “다시 없는 기쁨”이라고 말했듯이,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그렇게 행하기 때문이다.

“인내는 ‘짊어지는 것(portare su)’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문제를 짊어지게 한다거나 어려움을 짊어지게 하도록 맡긴다는 게 아닙니다. ‘내가 짊어질 거야. 이것은 내 어려움이고, 내 문제야. 왜 내게만 고통이 주어지는가? 아, 물론! 그렇지만 내가 짊어질 거야.’ (어깨 위에)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는 한계와 대화할 줄 아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한계가 있지만, 인내심이 없으면 한계와 대화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 한계를 원하지 않고 무시하게 됩니다. 전능함에 대한 환상이나 게으름에 대한 환상이 있지만,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 전혀 알지 못합니다. (...)”

함께하고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의 인내

교황은 또한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인내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충고”는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밝혔다. “우리가 구원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매번 ‘우상을 만들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가버렸던’ 당신의 ‘완고한 백성’에 대해, 그들을 앞을 향해 인도하셨던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인내’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인내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때를 기다려주시면서’ ‘우리 각자’에게 행하셨던 바로 그 인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이 ‘인내를 가지시도록’, ‘자기 사명을 짊어지시도록’, 그리고 ‘확고하게’ 수난을 통해 당신을 바치시도록, 성자를 파견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저는 중동에서 박해 받았던 우리의 형제들, 곧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내쫓겼던 우리의 형제들을 생각합니다. (...)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주님처럼 시험에 들었으며, 인내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민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당신 백성에게 시련을 견디기 위한 인내를 주소서.’ 또한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인내하지 못합니까. 일이 잘못될 때, 우리는 부르짖습니다. (...) ‘그렇지만, 잠시 멈추십시오. 하느님 아버지의 인내를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처럼 인내를 가지십시오.’ 인내는 아름다운 덕목입니다. 이 덕목을 주님께 청합시다.”

 

13/02/2018 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