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수치심의 은총을 청하고 타인을 심판하지 맙시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루카 6,37).

프란치스코 교황은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교회가 스스로를 쇄신하라고 권유하는 사순 시기와 같은 순간에, 2월 26일 복음(루카 6,36-38)에서 하신 예수님의 이러한 권유를 강력하게 되풀이했다. 사실 “아무도 개별심판과 최후심판으로 이뤄지는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는 이웃에 대한 태도와 하느님께 대한 태도를 성찰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자주 다른 이들을 심판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심판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웃을 용서하라는 초대를 받는다. 교황은 우리 각자가 “하지만 나는 결코 이웃을 심판하지 않아. 나는 심판관 노릇을 하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하면서, 우리의 태도를 검토해 보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얼마나 자주 우리 대화의 주제가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입니까! (...) 이런 일은 좋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황은 “도대체 누가 여러분을 심판관으로 세웠습니까?”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일한 심판관은 주님이시므로, 타인을 심판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심판 때 인간의 이러한 경향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모이는 회합에서, 점심시간이라든지, 혹은 어떤 것이든, 그것이 두 시간 정도 지속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두 시간 중, 우리는 타인을 심판하기 위해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을 소비합니까? 이런 일은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됩니까?’ 자비로워지십시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 더 나아가, 여러분은 관대한 사람이 되십시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무엇이 내게 주어집니까?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38절). 우리가 심판하지 않고 자비를 풍성히 베풀 때, 주님의 관대함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에게 자비로워지라는 초대는 주님께서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가 우리의 수치심(부끄러움)과 만날 때, 거기에 용서가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겸손할 것, 죄인임을 인정할 것

오늘, 교회의 두 번째 메시지는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지니라는 초대다. 겸손한 태도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데에 있다.

“하느님의 정의가 자비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다니 9,7)라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우리의 수치심(부끄러움)과 만날 때, 거기에 용서가 있습니다.” 이어 교황은 다음과 같이 성찰해보라고 권고했다.

“나는 내가 주님을 거슬러 죄를 지었다고 믿습니까? 나는 주님께서 정의로운 분이시라고 믿습니까? 나는 내가 자비롭다고 믿습니까? 내가 죄인임을, 나는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합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저희는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 따라서 우리는 수치심(부끄러움)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수치심(부끄러움)의 은총

끝으로 교황은 악을 일삼는 사람들을 자기 모국어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하느님 앞에서 결코 부끄러움이 부족하지 않도록” 은총을 청하라는 초대를 재차 강조했다.

“수치심(부끄러움)은 위대한 은총입니다. 이웃을 향한 태도를 기억합시다. 내가 심판하는 척도로 나도 심판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에 관해 관대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많은 자비를 입을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가지는 태도, 이것이 본질적인 대화입니다. ‘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저희는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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