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의 성 비오 신부, “나는 단지 기도하는 가난한 수사일 뿐”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17일 토요일 ‘오상의 성 비오 신부’의 선종 50주년과 오상(五傷, stigmata) 100주년을 맞아 산 조반니 로톤도(San Giovanni Rotondo)와 피엘트렐치나(Pietrelcina)를 방문했다.

파드레 비오(Padre Pio)로 잘 알려진 이 카푸친 작은형제회 출신 성인은 훌륭한 신앙과 깊은 신앙에서 비롯된 순종으로 큰 존경을 받는다. 아울러 오상의 고통을 포함해 극심한 고통을 견딘 그리스도의 목자로 여겨지고 있다.

아일랜드 카푸친 작은형제회 브라이언 쇼탈 신부(Fr Bryan Shortall, OFM. Cap.)에 따르면, 오상의 성 비오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최근에 성인이 된 것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에 그분은 우리 시대에 속한 인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단지 기도하는 가난한 수사일 뿐입니다

성 비오 신부는 1918년 처음으로 성흔을 받았고, 그 성흔은 향후 50년 동안 계속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년 후 비오 신부가 받은 성흔에 대한 소식이 이탈리아 전역과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쇼탈 신부는 비오 신부가 자신의 명성이 높아져도 늘 평상시와 똑같은 단순한 기도의 삶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분은 자기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개인숭배와 관련해서는 특별히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 사람들이 여러 차례 ‘당신은 도대체 무엇이고, 누구냐’고 물었지만, 그때마다 그분은 ‘저는 단지 기도하는 가난한 수사일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원했던 모든 것이었지만, 주님께선 그분을 위해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비오 신부님은 매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오르셨고, 매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경험하셨던 것처럼 황량함과 육체적 경험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비오 신부님의 신앙은 시험을 받았고, 분명히 자신의 신앙과 기도하는 삶에 있어 큰 고통을 겪으셨지만, 그분은 인내하셨습니다. 비오 신부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교황 방문의 중요성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17일 토요일 성 비오 신부가 성장했던 피에트렐치나와 그의 사목활동 무대인 산 조반니 로톤도를 방문해 이 프란치스코회 수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또한 교황은 2년 전 자비의 대희년 기간 동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오상의 성 비오 신부의 유해를 경배할 수 있게 했다. 쇼탈 신부는 이 두 가지 사건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오 신부라는 인물을 자비의 사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 (…)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을 받는 희생하는 사제”로 강조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교황이 산 조반니 로톤도와 피에트렐치나에 방문함으로써 “이 위대한 사랑을 인정하기를 바란다”는 점도 강조했다.

유산

성 비오 신부는 81세의 나이로 지난 1968년 선종했다. 따라서 그의 선종 후 50년으로부터 우리는 그 성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쇼탈 신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오 신부님이 남긴 유산은, 고통이 시간낭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거나 엄청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못 본 척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보지 못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고통과 투쟁을 매우 절실하게 느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거기서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 비오 신부님은 우리 모두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뢰를 두라고 격려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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