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참 예언자는 항상 희망을 안겨주는 사람”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사도 7,51). 교회의 첫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는 그를 최고 의회로 끌고 갔던 백성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사도 6,12 참조) 이렇게 고소했다. 그들의 마음은 닫혔고, 성 스테파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더 이상 떠올리지도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17일 전례의 제1 독서(사도행전 7,51-8,1)에서 전해주는 성 스테파노에 대한 사건을 되짚었다.

진리 때문에 야기된 박해

앞선 예언자들이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것처럼, 이 원로들과 율법학자들도 ‘마음에 화가 치밀어’(54절)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57절),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58절). 교황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언자가 진리에 이르러 (우리의) 마음을 건드릴 때, 그 마음이 열리거나, 혹은 그 마음이 돌보다 더 단단하게 변하여, 화가 터져 나와 박해가 시작됩니다. (…) 이와 같이 한 예언자의 삶이 끝나고 맙니다.”

참된 예언자는 백성을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불편한 진리는 많은 경우 듣기에 유쾌하지 않다. 교황은 “예언자들이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항상 이러한 박해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예언자가 강력하게 말할 때, 우리는 (과연 그가) 진리를 말하는 것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 예언자가 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으며, 진리를 저버린 백성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때입니다. 예컨대 예수님께서는 한편으로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마태 12,39)라며 엄격한 말씀으로 책망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루살렘에 대해 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참된 예언자는 자기 백성을 위해 울 줄 알아야 하고, 말할 때는 강경하게 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미지근하지 않으며, 언제나 직접적이어야 합니다.”

책망할 뿐 아니라 희망으로 인도합니다

교황은 참된 예언자란 ‘불운의 예언자’가 아니라 ‘희망의 예언자’라고 명시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문을 열어야 하고, 근본을 되찾아 주어야 하며, 하느님 백성에 속한다는 소속감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직무상 질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예언자는) 희망을 안겨 주는 사람입니다. 필요할 때 질책해야 하고, 희망의 지평을 바라보면서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합니다. 하지만 참된 예언자가 자기 직무를 제대로 이행하려면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합니다.”

교회는 예언자의 봉사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게 진리와 일관된 삶을 살기 위해 성 스테파노는 사울의 눈앞에서 죽어갔다. 교황은 교회의 초기 교부들 가운데 한 교부의 언급을 인용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다(Il sangue dei martiri è seme dei cristiani).”

“교회는 예언자들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우리 모두가 예언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난하는 예언자가 아닙니다. 이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항상 비판적인 심판관은 아무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것은 좋지 않아. 이것도 별로야. 마음에 안 들어. 아니야. 이것은 이래야 돼. (...)’ 그런 사람은 예언자가 아닙니다. 예언자는 기도하고, 하느님을 바라보며, 자기 백성을 바라봅니다. 그 백성이 잘못을 저지를 때, 고통을 느끼며 울지만(그는 백성을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말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쓸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교황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러한 예언의 봉사가 교회에 부족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강론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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