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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시성식…복자 바오로 6세 교황,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등 총 6명

추기경 회의

추기경 회의

23/05/2018 19:23

기다리던 (시성식에 관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오는 10월 14일, 복자 바오로 6세(세속명: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 교황이 젊은이를 주제로 열리는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기간 중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복자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 갈다메츠 대주교(Oscar Arnulfo Romero Galdámez)와 함께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19일 삼시경을 바친 뒤 몇몇 복자들의 시성을 위한 공개 추기경 회의 자리에서 이를 최종 확정했다. 성인 별자리에서 빛나게 될 새로운 별들은 모두 여섯이 될 예정이다. 이들은 복음에 대한 충실한 섬김으로 자기자신을 바친 남녀들로, 복자 바오로 6세 교황 이외에, △순교한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 대교구장 복자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 △성체흠숭수녀회(Istituto delle suore adoratrici del Santissimo Sacramento)의 창립자 겸 교구 사제였던 복자 프란체스코 스피넬리(Francesco Spinelli) 신부 △교구 사제였던 복자 빈첸초 로마노(Vincenzo Romano) 신부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시녀 수녀회(Istituto delle povere ancelle di Gesù Cristo) 창립자인 복녀 마리아 카테리나 카스퍼(Maria Caterina Kasper) 수녀 △지난 세기에 나자리아 이냐지아 마치 메사(Nazaria Ignazia March Mesa)로 불리던 교회의 십자군 전교회(Congregazione delle suore missionarie crociate della Chiesa)의 창립자 예수의 성녀 테레사의 나자리아 이냐지아(Nazaria Ignazia di Santa Teresa di Gesù) 동정녀 등이다.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Giovanni Battista Montini)는 지난 1897년 9월 26일에 브레샤(Brescia) 현(縣)의 콘체시오(Concesio)에서 태어나 1920년 5월 29일 사제로 서품됐다. 그는 처음부터 외교관이 되도록 예정돼 있었다. 성 요한 23세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서임 받기 3년 전인 1955년 밀라노 대주교로 임명 받았다. 아울러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속) 진행할 의사를 즉각 표명하면서, 1963년 6월 21일 바오로 6세라는 이름으로 베드로 직무를 계승했다. 이 특별한 경험의 결과는, 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용기로 여러 의견들을 실행하도록 했다. 7개의 회칙을 썼고, 9번의 해외 사도적 순방을 실행했으며, 성공회와 정교회와의 유익한 교류와 만남을 통해 교회일치적 관계를 발전시켰다. 그의 생애 마지막 시기는 교회 내의 분쟁과 그의 절친한 친구인 알도 모로(Aldo Moro) 이탈리아 전임 총리의 살해로 특징지워진다. 1978년 8월 6일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별장에서 선종했다.

복자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 갈다메츠 대주교

복음, 교회, 박해 받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오스카 마르눌포 로메로 갈다메츠 대주교는 지난 1917년 3월 15일 엘살바도르 공화국의 바리오스(Barrios)에서 태어났다. 1942년 4월 4일 사제로 서품됐고, 1977년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의 대교구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말기 환자를 위한 한 병원의 관리실에서 검소한 목자로 충실하게 살았다. 1980년 3월 23일 주교좌성당에서 했던 마지막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하느님과 고통 받는 민중의 이름으로, 당신들에게 간청하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들에게 명령합니다. 억압을 멈추시오.” 그 다음 날, 한 괴한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를 거행하던 병원의 경당에 숨어들어 그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는 피살되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을 위하여 제물로 바쳐진 (그리스도의) 이 몸과 희생된 (그리스도의) 이 피는, 그리스도처럼 (우리 모두의) 고통과 고난을 위해 우리의 몸과 피를 내어주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 이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열매를 우리 민족들에게 주기 위함입니다.”

복자 프란치스코 스피넬리 신부

“형제들 중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주기 위해, 거행하고 흠숭하는 성체성사로부터 더 열렬한 사랑을 퍼 올려라.” 이는 교구 사제였던 프란치스코 스피넬리 신부가 카테리나 코멘솔리(Caterina Comensoli)와 함께 창립한 성체흠숭수녀회의 목적이다. 그는 1853년 4월 14일에 밀라노에서 태어나 1875년 10월 17일에 사제로 서품됐다. 많은 시련으로 점철된 생애 동안 그는 가장 훌륭한 용서의 기술을 보여주며 신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적 앞에서는 오직 “무한한 사랑의 복수”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1913년 2월 6일 선종했다.

복자 빈첸초 로마노 신부

나폴리 현(縣)의 토레 델 그레코의 교구 사제였던 빈첸초 로마노 신부는 지난 1751년 6월 3일에 태어나 1775년 6월 10일 사제로 서품됐다. 지난 1794년 무서운 베수비오 화산 폭발 이후 그는 그 도시를 비롯해 당시의 유일한 본당이었던 산타 크로체 성당의 윤리적, 물리적 재건이라는 어려운 일에 전념했다. 그는 신자들과 더욱 가까이 있으려고 항상 새로운 방법을 연구했는데, 하나의 전교 전략으로 소그룹의 사람들이나 혼자 지나가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손에 들고 다가가서, 즉시 즉흥적인 설교를 하는 “시아비카(sciabica, 큰 그물 어업)”라는 방식을 도입했다. 아울러 “코랄린(coralline)”의 선주들과 산호 채취의 위험에 직면한 선원들 간의 대립이 발생할 때 그가 종종 중재자 역할을 했다. 1831년 12월 20일 선종했다.

복녀 마리아 카테리나 카스퍼 수녀

복녀 마리아 카테리나 카스퍼 수녀는 1820년 5월 26일 독일 데른바흐(Dernbach)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창립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시녀 수도회의 탄생은 몇몇의 동반자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했던 1845년에 그 뿌리를 깊게 내렸다. 그녀는 3년 뒤인 성모 승천 대축일에 그 마을의 가난한 이들에게 이 집을 개방했다. 마리아 카테리나 카스퍼 수녀는 수련자 양성을 이어가는 한편, 독일 이민자들을 돕기 위해 해외에도 새로운 집을 열었다. 1898년 2월 2일 경색으로 선종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나자리아 이냐지아 동정녀

나자리아 이냐지아 마치 메사(Nazaria Ignazia March Mesa)는 스페인의 마드리드(Madrid)에서 1889년에 태어나, 가족과 함께 멕시코를 여행하는 도중 몇몇의 수녀들을 만나 성소를 발견하고 완성했다. 스페인에서 수련을 마친 뒤, 1908년 볼리비아의 오루로(Oruro) 선교를 위해 아메리카 여정을 시작했다. 1920년 하느님 나라에 대한 피정 후에 “모든 교회를 끌어 안은 사랑의 십자군”를 뜻하는 새로운 수도회에 대한 지향을 갖는다. 1925년 6월 16일에 교황청립 십자군 전교수녀회(Suore missionarie della crociata pontificia)란 이름으로 수도회를 창설했고, 이후에는 교회의 십자군 전교회(Missionarie crociate della Chiesa)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 단체는 여자 수도회로 특별히 사회사업 증진과 여성 일자리를 지원한다. 아울러 1938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그녀는 그곳에서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많은 시설을 열었다. 194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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